창조절,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의 환대

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0월 다섯번째 주일
룻기 1:1-5, 16-18
창조절,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의 환대
정해빈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룻기 말씀은 인생의 재난을 만난 3명의 여인들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옛날 사사 시대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나오미 가정이 기근을 피해서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민을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가정이 살던 베들레헴은 본래 떡집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베들(집) + 레헴(떡)이라는 말 자체가 떡집을 가리킵니다. 떡 방앗간 동네로 알려질 만큼 베들레헴은 농산물이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엘리멜렉/나오미 가정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고 나서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정의 재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압 지방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엘리멜렉이 죽었고 10년쯤 후에는 두 아들마저 죽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과 오르바만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옛날 사람들이 기근/재난/질병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질병이 사라졌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삶이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봄철 보리 고개가 있었고 굶주림, 영양부족, 위생부족,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오미 가정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나오미 가정은 기근/재난/이주/질병을 모두 겪었습니다. 성경은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왜 죽었는지 자세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영양부족이나 거친 노동이나 질병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오미는 1장 13절에서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고 1장 20절에서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히브리어로 “기쁨”을 가리키고 마라는 “괴로움”을 가리킵니다. 본래 내 이름이 기쁨인데 이제부터는 괴로움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난을 만날 때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거나 조상을 잘못 만났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미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가 하나님께 큰 죄를 지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나오미 가정이 유대 땅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이주한 것이 큰 죄라고 설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이민/난민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힘든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읽은 욥기의 세 친구들도 욥을 향해서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욥과 나오미가 고난받은 것은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기근과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오미의 재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 자연재해를 만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난을 만났을 때 재난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은 7년 풍년이 지난 후에 7년 흉년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였고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요셉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질병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지혜를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은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이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받는 사람에게 죄를 따지는 것은 고난받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을 빨리 물에서 건져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고난받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죄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격려하고 일으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두 며느리에게 나를 따라가지 말고 너희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고 말했습니다.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간청하자 나오미는 나를 따라오면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니 돌아가라고 말하였고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룻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고난 중에도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세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의 앞날을 걱정해 주었고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앞날을 걱정해 주었습니다. 오르바가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시어머니의 뜻을 따랐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가 새출발을 하기를 원했고 룻과 오르바는 나오미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동행하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들은 서로를 축복하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고난을 대처하는 바른 신앙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자연재해와 질병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서로를 탓하기 보다는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착한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는 갑자기 찾아온 고난 앞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며 고난을 극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선한 마음과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였던 것처럼 유대 사람들은 모압 사람들을 동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본래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의 친척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 사람들이 보기에 모압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방해하는 사람들이었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받는 나오미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았던 사람들은 모압 며느리 룻과 오르바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말하는 것처럼 강도만난 유대 사람을 돌보았던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마찬가지로 과부가 된 나오미를 돌보았던 사람도 모압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같은 인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대/돌봄을 실천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역, 인종, 성별, 문화, 종교에 대한 선입관을 벗어버리고 아무런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처럼 고난 중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축복함으로서 함께 고난을 극복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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