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여성과 어린이들

창조절 다섯번째 주일 / 10월 첫번째 주일
마가복음서 10:2-16
창조절, 여성과 어린이들
정해빈목사

 

우리는 요즘 계속해서 창조절 절기를 지키며 창조신앙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창조절 신앙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감사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도 감사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도 감사합니다. 창조절 신앙은 우리의 삶을 더 감사하고 더 기뻐하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창조절 신앙을 갖지 않고 세상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무미건조하고 메마를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와도 무덤덤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무덤덤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떨어져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창조절 신앙이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무덤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창조절 신앙이 있기 때문에 이름없는 꽃 한 송이를 봐도 놀랍고 신비롭고 감사하고, 작은 대추 도토리를 봐도 놀랍고 신비롭고 감사합니다. 창조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매일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조신앙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창조의 원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세상을 창조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사랑하셔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셨기 때문에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하면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줍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보내셔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를 다른 말로 하면 자기나눔, 자기분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나누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신 후에는 모든 피조물의 존재 자체를 보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뛰어나거나 일을 잘하기 때문에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를 보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에 있는 작은 나무들, 돌멩이, 길가에 핀 들꽃과 풀들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튼튼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에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노인들은 쓸모없는 존재들입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달해서 컴퓨터가 일하는 시대가 오면 이런 생각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사람보다 컴퓨터가 일을 더 잘하고 일을 더 많이 합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안하겠지만, 내가 컴퓨터보다 똑똑하지도 못하고 일을 잘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세상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 잘하는 기계로 만들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내가 비록 똑똑하지 못하고 힘이 없어도 나의 모습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조의 원리가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며 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0장 말씀을 통해서 창조의 원리가 능력이 아니라 사랑과 돌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기 위해서 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를 통치하는 헤롯 안티파스는 부인과 이혼하고 배다른 형제의 부인과 결혼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말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고 말하면 세례요한처럼 붙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4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여유있는 남편들이 사소한 트집을 잡아서 아내를 쫓아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쫓아내면 아내는 수치를 당했기 때문에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남편들이 아내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면 동네 사람들 앞에서 이혼증서를 써 주고 재물을 준 다음에 집에서 내보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혼증서를 써 주면 부인은 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래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이혼하면 안되지만 남편들이 사소한 이유로 아내를 버리기 때문에 모세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날 때만 이혼할 수 있고 이혼할 때는 반드시 이혼증서를 써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나름대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남편들은 모세의 이런 계명을 또 악용하였습니다. 신명기 24장은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이 생길 때만 이혼증서를 써 주라고 했는데 나쁜 남편들이 아내를 내쫓기 위해서 사소한 것들도 다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밥을 잘 못해도 수치스러운 것이고 빨래를 잘 못해도 수치스러운 것이고 농사일을 잘 못해도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모세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계명을 만들었지만 남편들은 그 계명을 악용해서 얼마든지 부인을 쫓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이 남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 수치스런 일이 있으면 이혼하라고 했는데 반대로 남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 이혼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서로 합의해서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남편들을 향해서 둘이 만나서 한 몸이 되었으니 사소한 트집을 잡아서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부유한 남편들이 부인을 여러 명 두고 부인들을 함부로 대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사랑과 돌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이나 이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 일을 잘 하는가 못하는가 이런 것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대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9월 30일은 캐나다 연방 정부가 제정한 ‘Orange Day’ 였습니다.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희생된 어린아이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어린이들을 부모에게서 떨어뜨리고 학대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꾸짖는 것을 보시고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린이들은 힘도 약하고 밥만 먹고 돈을 벌어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어린이들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모에게 기쁨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세상적으로 쓸모가 없을 지라도 우리의 모습 자체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보시고 그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컴퓨터는 사람보다 똑똑하고 일도 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사람보다 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 잘하는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서로를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창조절 절기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습 자체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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