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기독교 신앙

사순절 세번째 주일 / 3월 첫번째 주일
3.1운동과 기독교 신앙
다니엘서 1:1 – 8
정해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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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운동 99주년 기념예배/청년주일로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신앙과 3.1운동의 관계에 대해서, 청년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기독교신앙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3.1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고 4월 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으니까 내년이면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인구의 1/10인 200만 명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는데 7,500명이 사망했고 16,000명이 부상했으며 47,000명이 투옥되었습니다. 전국각처,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참여했고 한국인이 있는 세계 모든 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종교인들과 학생들이 앞장섰는데 기독교 대표 16인, 천도교 대표 15인, 불교 대표 2인 총 33명의 대표들이 모여서 만세운동을 계획했습니다. 동학(천도교, 불교)과 서학(기독교)이 교리를 떠나서 한마음으로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3.1운동은 비폭력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일제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는데 비폭력운동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우리들도 미국처럼 독립선언을 하고나서 바로 독립전쟁을 했어야 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구한말 의병항쟁이 있었고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의거도 있었고 만주에서 활동했던 독립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한국을 점령하면서 한국인의 손에 있던 총포와 화약을 다 빼앗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손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독립만세운동이었습니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폭력은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역사와 사회를 바꾸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총칼은 사람을 짓밟을 수는 있어도 사람의 양심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서 17명이 죽으니까 대통령이 교사들이 총을 휴대하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교사들이 허리에 총을 차고 수업을 하면 총기사고가 줄어들까요? 내 손에 총이 있으면 화가 나면 총을 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 온 미국 언론들이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줄로 알았는데 총도 없고 경찰도 없고 너무 안전해서 깜짝놀랐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경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겠지만 총기사고가 없는 것이 미국 언론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총으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20세기에 있었던 모든 종류의 비폭력운동이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3.1운동을 통해서 비폭력운동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1운동을 시작으로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독립운동, 미국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아랍의 민주화운동, 한국의 촛불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수백 만 명이 평화적으로 참여하는 독립운동/민주화운동은 그래서 힘이 크고 결과가 큽니다.

둘째로 3.1운동을 대표했던 33인들이 과도하게 포장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거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음식점에 모여서 독립선언을 하고 종로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찰서로 끌려간 것은 자신들의 생명의 위험을 각오하는 길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 이광수, 최남선 같은 사람들은 일제 말기에 변절하고 전향을 했습니다. 그들이 왜 끝까지 마음을 지키지 못했는지 아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1919년 만세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이었다는 것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한두 사람이 변절했다고 해서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3.1운동으로 독립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3.1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을 넘어 중국을 침략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독립만세운동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때 일어난 3.1운동은 조선 사람들이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지도자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서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그 임시정부는 나라의 국민이 직접 주인이 되는 민국으로 정했습니다. 3.1운동 자체가 각계각층, 남녀노소,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참여했기 때문에 나라의 이름을 민국으로 정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1919년 3.1운동의 최대 성과는 “왕조나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되는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최초로 국민이 주인되는 민국이 100년 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국의 뜻에 대해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황제가 1인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2천만 국민이 다 황제입니다. 황제가 무엇입니까? 주권자의 이름이니 과거의 주권자는 한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여러분이 다 주권자입니다. 과거의 주권자가 한사람이었을 때는 국가의 흥망이 1인에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 전체에게 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3.1운동을 통해서 국민은 “황제”가 되었고 “정부 직원은 국민의 종”이 되는 천지개벽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군주인 국민은 국민의 종인 정부 직원을 선하게 인도하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하고 국민의 종인 정부 직원은 군주인 국민을 섬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이제 3.1운동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1%인 20만에 불과했지만 3.1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두 개의 종이에 지도를 그려놓고 한쪽 지도에는 교회를 점으로 표시하고 또 다른 종이에는 3.1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을 점으로 표시한 다음에 두 종이를 겹치면 점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기독교는 3.1운동에 앞장섰습니다. 3.1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3.1 운동은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당시 일본군은 경기도 제암리 교회 교인 30명을 교회당에 가두고 불을 질러서 모두를 숨지게 만들었고 이 사실을 스코필드 박사가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미국/캐나다로 이민와서 조국을 버리고 더 미국/캐나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더 일본 사람처럼 행동하는 조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이집트 제국으로 팔려간 요셉은 고향을 잊지 않고 흉년이 들었을 때 동포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다니엘은 나라가 망해서 어렸을 때 바벨론 제국에 끌려갔지만 조국을 잊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3.1운동은 우리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마지막으로 3.1운동은 우리들에게 폭력과 제국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종류의 폭력과 제국을 반대합니다. 여러분 제국이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는 것이 제국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유다를 침략한 다음에 다니엘 같은 청소년들을 끌고 가서 바벨론의 언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바벨론 음식을 먹게 하고 왕을 모시도록 했습니다. 제국의 사상/종교를 가르치는 학문을 제국신학이라고 합니다. 제국은 그렇게 함으로서 식민지 청소년들을 제국의 신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바벨론 음식을 멀리했습니다. 바벨론 음식을 멀리했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안 먹었다는 말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의 종교/문화/정책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어 표현 중에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결정된다는 표현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에 끌려갔지만 제국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정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 한인사회와 한인교회가 다니엘과 같은 의로운 청년들을 많이 후원하고 길러내야 하겠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해외에서 살았지만 항상 조국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우리 교회가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청년들을 많이 길러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제국신학을 멀리하며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3.1 Movement and Christian faith
Daniel 1:1 – 8

In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King Jehoiakim of Judah,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and besieged it. The Lord let King Jehoiakim of Judah fall into his power, as well as some of the vessels of the house of God. These he brought to the land of Shinar, and placed the vessels in the treasury of his gods. Then the king commanded his palace master Ashpenaz to bring some of the Israelites of the royal family and of the nobility, young men without physical defect and handsome, versed in every branch of wisdom, endowed with knowledge and insight, and competent to serve in the king’s palace; they were to be taught the literature and language of the Chaldeans. The king assigned them a daily portion of the royal rations of food and wine. They were to be educated for three years, so that at the end of that time they could be stationed in the king’s court. Among them were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from the tribe of Judah. The palace master gave them other names: Daniel he called Belteshazzar, Hananiah he called Shadrach, Mishael he called Meshach, and Azariah he called Abednego. But Daniel resolved that he would not defile himself with the royal rations of food and wine; so he asked the palace master to allow him not to defile himself. (Daniel 1:1-8)

We are here today to commemorate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at took place on March 1st, 1919. This movement teaches that Christians should love and pray for their country. Although Daniel was taken to the Babylonian Empire when he was a child, he prayed day and night without forgetting his country. 3.1 Movement also teaches that we must work for peace and against violence and empire. Christian faith opposes all kinds of violence and empire. Although Daniel was dragged into the Empire, he did not follow “the theology of the empire” but served God of justice and mercy, who always remembers the suffering and saves them. We pray that our Korean community and church support young generation so that they live the life of Daniel.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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