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회개 가운데서 드리는 추수감사

창조절 여섯번째 주일 / 10월 두번째 주일
출애굽기 32:1-8,  빌립보서 4:1-9
고난과 회개 가운데서 드리는 추수감사
정해빈 목사

 

추수감사절이 오면 사람들은 Happy Thanksgiving이라고 부르며 감사예배를 드리고 가족모임을 갖고 칠면조 요리와 같은 만찬을 즐깁니다. 추수감사절은 글자 그대로 Happy 행복한 날입니다. 하지만 2020년 추수감사절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흩어졌던 가족/친구를 만날 수 없고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 떨어져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추수감사절을 지내며 우리는 지금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추수감사절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 신앙의 선배들은 전쟁 중에 추수감사절을 지내기도 했고 고난/가난/질병 가운데서 추수감사절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감사를 고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감사할 것이 없는데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난을 통해서 내가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을 수도 있고, 고난을 통해서 교만했던 나의 삶을 회개할 수도 있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께 더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감사를 고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저 옛날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가진 것이 없어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으로도 기뻐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3:17-18). 성경에 나오는 감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고백이 하박국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서 고난받고 있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독교는 가을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가을에 설날과 속죄일을 지킵니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 달력에 의하면 새해는 양력으로 9월말-10월 초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새해를 “로슈 하샤나(Rosh Hashanah)”라고 부르는데 1월 1일에 나팔을 불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10일 간의 신년축제가 끝나는 날을 속죄일, “욤 키푸르(Yom Kippur)” 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1월 10일에 속죄일 금식을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때가 캐나다의 추수감사절 시기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속죄일은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모세가 없는 동안에 금송아지 동상을 만들고 먹고 마셨습니다. 모세는 그 장면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깨뜨렸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을 회개한 날이 오늘날의 속죄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속죄일에 개인과 국가와 인류의 죄를 회개하고 구제헌금을 하고 물질을 나누며 새로운 삶을 결단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유대인들처럼 고난을 경험하고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2020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에 의하면 10월달 가을은 회개하는 날입니다. 때로는 고난과 회개 가운데서 추수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2020년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회개 가운데서 드리는 추수감사를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출애굽기 32장에 의하면 히브리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 50일 만에 시내산에 도착하였고 십계명을 받았고 세상을 축복하는 제사장 민족이 되기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집트의 노예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인이 된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삶을 축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옳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모세의 형 아론을 설득해서 금으로 만든 황소를 만들고 축제를 즐겼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금황소를 만들고 금황소가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금황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대신에 힘이 센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황소 처럼 힘이 세기 때문에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긍휼이 많으시고 고통받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으로 계신 하나님,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은 멀게 만 느껴집니다. 그들은 황소 같이 힘이 세고 생산과 풍요를 보장하는 하나님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힘/물질/건물/동상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우상/동상/건물을 섬기지 않습니다. 영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금송아지 동상에 현혹되지 않는 신앙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번째 말씀으로 빌립보서 4장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사도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바다를 건너 유럽,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였고 유럽의 첫번째 도시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썼는데 오히려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고 축복하였습니다. 비록 지금 고난을 받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4:4-7)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셨으니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사하고 그 다음에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만 먼저 감사하고 나중에 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고난이 있을지라도, 아직 구하는 것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먼저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난/회개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구하기 이전에 먼저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은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신앙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고 빌립보서 말씀은 고난 중에도 먼저 감사를 고백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연을 통해서 풍성한 먹거리를 주시니 우리는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이 힘든데 자연재해까지 닥쳤더라면 우리의 삶은 더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캐나다의 가을도 아름답지만 고향의 가을도 아름답습니다. 누렇게 익은 벼와 빨간색으로 물든 감나무와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우리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에도 우리들에게 풍성한 가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고난/회개 가운데서 고백하는 우리의 감사를 기뻐 받으시고 우리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고 회개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인줄로 믿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를 고백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감사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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