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감사 / 서동천 목사

추수감사절 예배 / 10월 둘째주 주일
근본적인 감사
출애굽기 20: 1 – 4, 8 – 17 마태복음 21: 33 – 43
서동천 목사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에서 살때는 애굽사람들이 아주 강하니까 온 세상이 그들의 것으로 생각했고, 애굽사람들도 자기네가 온 세상을 통제할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그러나 히브리사람들이 출애굽과 광야를 거쳐가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해 주시니까 온 세상이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읍니다.

10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심되는 내용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이죠. 이는 또한 구약이 교회 신학에 미친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십계명은 또한 서양문화가 발전하게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의 하나를 보여줍니다.

시내사건 이전에는 히브리사람들은 단지 도망나온 노예의 무리에 불과했죠. 그런데, 시내사건이 생긴 이후부터는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 되었읍니다. 이 계약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하셨읍니다.

마태복음 21장에보면, 어느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을 여러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멀리 갔읍니다. 얼마 있다가 세를 받기위해 자기 종들을 보내고 심지어 자기 아들까지 보냈지만, 포도원을 강제로 차지하려고 그들을 다 죽였지요.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그 악한 소작인들을 다 내보내고 새로운 소작인들을 고용하게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주인은 하나님이며, 악한 소작인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을, 그리고 그의 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소작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며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지요.

여기서 제시되는 문제는:

ㄱ) 예수를 거부하고 그를 배반하는 일.

ㄴ)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

ㄷ) 예수님은 낯선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특히 믿음의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거나 배반당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을 거절하거나 거부하는데에는 여러가지 형태나 문제가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읍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리고 오늘도 거절당하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 지난 250여년간이나 노예로 살아왔고, 지난 100년간 인종차별로 남들과 분리당하며 살아온 미국에 사는 흑인들
  • 독일에서 자행된 대량학살 희생자들
  • 시베리야에서 강제노동으로 희생된 사람들
  • 북한 독재체제 하에 강제노동과 빈곤속에 고생하는우리동족
  • 비인간취급받고사는 인도의 최 하급계층의 사람들
  • 차별받고 사는 오스트랄리아의 원주민들
  • 캐나다에서 차별받고 집단 기숙학교에서 희생된 원주민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땅, 이 지구촌이라는 포도원의 책임을 맡은 일꾼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포도원이 건전하게 잘 되도록 하기위해 두려움없이 일하는 책임을 맡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새 일꾼들인가요? 새일꾼들로서 무엇을 갖고 있나요? 무엇이 필요한가요?

하나님께서 이 광활하고 풍요로운 복된 땅에 우리를 부르셔서 세계 각처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게하십니다. 이 복된 땅을 잘 돌보라고 하시며,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잊지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받으신 축복들을 세어보세요. 이 땅의 풍성한 자원들을 감사하세요. 우리 가정들, 지역사회, 세계공동체를 통해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보여주신 하나님의 활동과 섭리를 감사하십시다.

하나님께대한 우리의 반응은 감사입니다. 우리는 찬송가 1장에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노래합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말아죠. 열광적으로 살면서 생명의 선물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뜻입니다.여러분이 갖고계신 재능과 능력을 모든사람을 위해 바로 쓰게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하지요.

30년의 전쟁을 치루는 동안인 1636년에 독일의 한 목사인 말틴 린칼트는1년에 5000명 교인의 장례를 담당했으니, 하루에 14명씩을 장사지낸 셈이됩니다. 전쟁, 죽음, 경제적 파탄으로 그의 교구는 거의 다 파괴상태였읍니다.

이렇게 사방에서 사람들이 두려움에 울부짖는 처참하고 어두운 상황 가운데서 린칼트목사는 그의 자녀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감사기도의 글을 썼읍니다:(우리 찬송 66장)

  •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하여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그는 감사라는 것은 어떤 외부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믿음과 감사는 같은 뜻을 지닌 두 단어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무엇인가 갖는 것을 의미하지않고, 우리가 무엇인가 하는것,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한 교회나 공동체는 그 공동체가 갖고있는 자원들을 재발견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즉,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재능들을 찾아서 서로 연결시켜주는 일, 함께 행동하고, 실천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이 담긴 컵은 반이 비어있는것이 아니라 반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관점에서 보고 일을 시작해야합니다.

어떤 차에 이런 짧은 글이 붙어 있었읍니다: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우연하게 거저 오는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해서 온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목회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세상은 우연이나 거저 되어지지 않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사는가, 또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내용을 변화시킬때에만 가능합니다.

감사절에 어느 양로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거주자들이 모두 식탁주위에 둘러 앉았읍니다. 원장이 각사람에게 감사할 제목 한가지씩 얘기하라고 했읍니다.

어느 할머니께서 자기 차례가 되어 말합니다:

“나는 완전히 튼튼한 내 두 이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는 윗쪽에 또 하나는 아랫쪽에 있으니 둘이 서로 잘 맞는 위치에 있어서 내가 음식을 잘 씹을수가 있읍니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합니까? 우리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나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들을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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