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나무와 숲을 돌보는 사람
창조절 첫번째 주일 / 9월 첫번째 주일 창세기 2:4-10, 15, 사도행전 17:22-28 창조절, 나무와 숲을 돌보는 사람 정해빈 목사 성도님들 다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8월까지 5개월 … Continue Reading →
Alpha Korean United Church
고난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무엇에서 비롯된 고난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난에는 내가 원인이 된 것과 나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닥치는 고난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난이 여러분 자신 때문이라면, 당장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시면 됩니다.
사실,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고난에 대한 내용은 나때문에 생긴 고난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에 대한 것이죠.
고난에 대해 가장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말씀이 욥기입니다. 하지만, 욥기의 주제는 ‘고난’뿐만 아니라,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되는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오늘, 이 모두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이 한 말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사탄이나(욥1:7, 9-11)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사람이 한 말이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뱀이 하와에게 한 말이나, 가롯 유다가 한 말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짧은 구절을 발췌해서 사용할 때는 그 구절이 속해 있는 말씀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피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영적인 내용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구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좋아해서 사업처에 액자로 많이 걸어 놓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 안밖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할까요? 듣기 좋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시작한 가게나 사업체에 이 성경구절을 걸어 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번창할 것 같은 마음의 위로와 힘을 얻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말씀이 그런 의미의 말씀일까, 더 나아가, 이 말씀이 ‘고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요즘에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이 성경구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욥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인 빌닷이 한 말입니다.
빌닷의 말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빌닷의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욥이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상을 반대하셨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대하신 빌닷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빌닷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위해, 먼저 그와 반대되는, 즉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욥과 그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욥기의 시작인 천상어전 회의에서 욥이 당하게 되는 모든 고난의 원인은 사실, ‘하나님의 신뢰’에서 시작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셨고, 사탄은 하나님의 신뢰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이 욥을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더 나아가,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 욥과 친구들과의 대화가 모두 끝난 후, 그 내용을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평가에서 드러난 것은 ‘욥의 말은 옳았고, 친구들의 말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빌닷의 말이 잘못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정확히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습니까?
욥과 친구들의 방대한 양의 대화를 요약하면, 친구들이 끊임없이 욥에게 말하는 내용은 ‘네가 죄가 있어서 벌을 받았다’는 것이고, 친구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죄가 없으면 고난을 주실 리가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이런 주장에 대한 욥의 대답은 ‘나는 죄가 없는데 하나님이 고난을 주고 계신다’입니다. 누구의 말이 옳습니까?
욥기의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이 고통을 주실 때 성도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단지 왜 자기에게 그 고통을 주시는지 이유를 몰라 답답해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과응보만의 하나님’이라는 굴레 안에 가두었습니다. 이 생각 혹은 사상은 말씀에 근거한 생각이 아니고 기독교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교와 같은 동양철학 종교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친구들의 생각에 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인과응보의 덕목을 인정하시지만, 인과응보만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욥기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의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는 자에게만 고난과 벌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며, 청결하고 정직하게 행하면, 하나님은 너를 반드시 돌보시고 평안하게 하실 것이다(고난을 제거). 네가 이렇게 행하기만 하면(인과응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즉, “네가 이렇게 이렇게 하기만 하면, 그리고 착하게 살면, 나중에 다 잘 될 거야, 복 받을 거야!’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런가요?
하나님은 욥을 향해, ‘온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인정하시는데, 빌닷은 욥에게 ‘청결하고 정직한 자’가 되라고 충고합니다. ‘온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해당하는 개념이고, ‘청결’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영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온전’하다고 칭하시며 그것과 관련하여 고난을 주시는데, 빌닷은 사람 사이의 문제, 그로 인한 죄 범함의 문제와 관련하여 ‘청결’해지라고 충고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이 사람들 사이의 죄와 잘못의 문제를 다루나요? 더 나아가, 그 고난이 세상의 부귀영화의 복과 관련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욥과 여러분에게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잘 되게 해줄게. 그러면 복 받을 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나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흠 없는 자로 여기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시고 복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에 근거해 고난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통해 가장 큰 복인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을 통해 큰 것을 주십니다.
욥기의 결론에서 욥이 받은 큰 복은 단지 물질적인 복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이 아닌, ‘눈으로 주를 뵙는 영적 깊이’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욥이 그 하나님을 만났더니, 자연스럽게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무엇에 대한 회개였나요? “제가 이런 이런 일을 잘못했습니다.”라는 회개가 아니라, “제가 전에는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라는 회개입니다.
이민 생활로 인해, 여러 문제로 인해 고난을 당하시는 성도 여러분, 말 못할 고민이 있는 성도 여러분,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고난의 문제로 낙심되십니까? 하나님은 온전하다고 여기는 사람, 의롭다고 칭한 사람, 성도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성도가 잘못한 일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귀로 듣기만 했던 성도에게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 고난을 당하시면 힘들더라도 기뻐하십시오. 기대하십시오. 옆의 교우가 고난을 당하면 “저 분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전한 사람이구나!”라고 용기와 위로를 건네 주시기 바랍니다. 영안으로 하나님을 보고 나면,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곤경이 돌이켜지는 복, 자유함을 얻는 복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답답했던 마음, 억울했던 심정,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보니, 마음이 뻥 뚤리는 듯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진리이신 하나님, 진리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서 알기만 하면,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고난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을 받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참 성도로서 고난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더 깨닫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옆의 성도가 고난 당하는 것을 보시거든, 그저 그 분이 하나님을 만나 더 큰 자유함을 얻게 되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번, 옆에 계신 분을 축복하겠습니다. 옆의 분을 보시고 저를 따라해 주시죠. “고난 중에 계신 성도님,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분이군요! 고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우리 모두가 고난의 고수들이 되어서 매일 행복하고, 자유함이 넘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조절 첫번째 주일 / 9월 첫번째 주일 창세기 2:4-10, 15, 사도행전 17:22-28 창조절, 나무와 숲을 돌보는 사람 정해빈 목사 성도님들 다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8월까지 5개월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열세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8월 30일 예배의 부름 / 시편 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우리의 반석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니 땅이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열두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8월 23일 예배의 부름 / 시편 44편 하나님, 우리는 두 귀로 들었습니다. 그 옛날 우리 조상이 살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열한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8월 16일 예배의 부름 / 시편 42편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내 영혼이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열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8월 9일 예배의 부름 / 시편 41편 주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님께서 그를 구해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아홉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8월 2일 예배의 부름 / 시편 40편 주님, 내가 간절히 주님을 기다렸더니 주님께서 나를 굽어보시고 나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멸망의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여덟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7월 26일 예배의 부름 / 시편 39편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입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일곱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7월 19일 예배의 부름 / 시편 37편 하나님,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여섯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7월 12일 예배의 부름 / 시편 37편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 Continue Reading →
알파한인연합교회 성령강림절 후 다섯번째 주일 가정예배 순서 2020년 7월 5일 예배의 부름 / 시편 36편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주님의 …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