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및 소회 소식

요한회 - 4월 월례회 성경공부 교재

요한회
작성자
Karen
작성일
2018-04-03 16:19
조회
1690

함석헌 요한복음 강해1
2018년 4월 1일 부활절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이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들의 목자이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결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그것은 양들이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요한복음 10:1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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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양이란 글자는 양을 그려서 놓은 자인데 늘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착할 선(善)자, 아름다울 미(美)자, 옳은 의(義)자, 상서로울 상(祥)자 그게 다 양(羊)변에 쓰입니다. 아마 양을 옛날 사람이 일찍부터 쳤겠죠. 아시는 대로 양들이 성격이 착하지 않아요? 양은 천생이 늘 무리를 지어 살아요. 울타리를 지어서, 그래서 무리 군(群)자를 양 양(羊)을, 군은 의미이고, 양처럼 무리를 짓는 거예요. 개라는 놈은 성격이 혼자만 돌아다녀. 그래서 홀 독(獨) 혼자라고 할 땐 개(犭)변에 써서, 같은 사람이 기르는 짐승인데도 성격에 따라서 다릅니다. 이쪽 옆의 건 개변인데 본래 개 모양을 그린 거죠. 이렇게 된 거예요. 자연이 같은 동물이라도 태생이, 성격이 다른 거라고요. 어쨌든 양이 일찍부터 사람들에게 성격이 퍽 좋은 걸로 알려졌어요. 그래서 대단히 좋게 표시가 돼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사람을 양으로 표시하는데 뭣 때문에 그랬나? 세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양이 단체 생활, 공동체, 요새 종교말로 커뮤니티라고 합니다. 양은 떨어져서 혼자 사는 법이 없어. 양만이 아니고 생물의 근본 버릇의 하나가 단체로 사는 것입니다. 식물도 나게 되면 솔밭은 솔밭대로 있고, 잡목은 잡목대로 무리를 짓지 않아요? 그리고 또 기러기 같은 거, 흥사단에서 쓰는 기러기도 늘 하나로 무리지어 다녀, 물고기도 무리지어 다녀, 어떻게 보면 생존 경쟁이라고 그러는데, 같이 다니면 얻어먹기 어려울 것 같은데, 먹는 풀을 보면 같이 가면 얻어먹을 것이 어려울 것처럼 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살림은 하나로 되게 되어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생물이 단체적으로 살아가는데, 생존 경쟁이라 하는 것이 생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인 것 같아서 언제든지 강한 놈이 산다, 적자생존이다, 가장 환경에 적당한 놈만 살아갈 수 있다, 자연 도태, 이기고 나오는 것은 생존 경쟁을 해서 이긴 놈이 된다, 이것을 강조해. 그런 것을 정치에다 적용해서 부국강병주의를 써서 언제든지 강한 놈이 살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아주 지배적인 사상 아니에요? 그것도 철학에서까지 그러니까, 대개 학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늘 따라가지 않아요?

문화가 발전하는 데는 경쟁은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주 힘껏 주장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단히 다르게 보게 되었어요. 이제 같은 생물계 현상을 놓고도 한 사람은 생존경쟁을 말하는데 한편으로 상호부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같은 사람이 대표입니다만 살아가는데 서로 서로 도와서 돕기 때문에 살아가게 되는 거지 경쟁만이 아니다, 경쟁이란 현상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협동해서, 코퍼레이션(cooperation)하기 때문에 살아간다. 지금은 우리가 그 점을 생각해야 할 거예요. 인생으로서, 사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이 나아져서 옛날에는 그렇게 보던 것을 지금은 그보다 더 넓게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생이고 정치고 뭐건 간에, 사람이 어떡하면 사람 노릇을 하고 바로 살아갈 것이냐? 그 점을 생각해서 걱정을 해서 말씀해 주시는 건데, 이제 양을 가지고 비유를 하시는데, 첫째 그 양이라는 것을 취할 것은 공동생활입니다. 이것은 결코 떨어져서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땐 가다가 무리가 다 죽는 일이 있는 한이 있어도, 그것들은 늘 무리를 지어서 다니고 있고, 뭔지 근본성격이 그렇게 됐어. 그게 하나고 둘째는 양이 아주 평화적이야. 당초 맹수는 물론 아니지만 남을 해하려는 그런 성격이 없어. 성경에도 면양하고 산양하고 성격 대조해 비교한 게 있습니다만, 면양은 더구나 성격이 아주 온순하지 않아요? 하여간 양은 대단히 평화 동물이라고 그러는 거.

그 다음 셋째는 양의 특색이 뭐냐 하면, 이게 단순해요. 아주 심플해. 단순하기 때문에 어떤 한편으로 어리석어. 고게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염소와 다른 게, 나는 염생이는 길러봐서 압니다만은, 인격수양 된다고 했어요. 염생이 먹이면서 화 안 내는 사람, 그 사람 참 특별한 사람이에요. 웬만한 사람은 화 안 낼 수가 없어, 고놈이 들어오면 창구멍을 갉아먹으면서도 주인을 살살 보면서 싹 몰래 있으며 먹고 도망하고 해요. 그 놈이 눈치가 아주 있습니다. 그게 면양과 산양이 아주 다른 점이야.

그래 동물 중에도 더구나 이 초식동물은 참 좋다고 그럽니다. 새김질하는 거, 왜 그러냐? 그러면 이놈들이 평화동물이기 때문에 새김질하게 된 거야. 다른 맹수 같은 것은 남을 잡아먹는 거니까, 당장 먹으면, 있다가 먹고 그러면 그만이지만, 이거는 자기가 남을 해할 생각이 없는 동물이니까, 대적이 언제 올는지 모르니까 풀을 만난 김에 씹을 새가 없어. 덮어놓고 많이 먹어야 돼. 그러니까 첫 번 위집은 그저 쓸어 넣을 수 있게 많이 먹습니다. 그렇게 하곤 이제 안전한 곳에 가서 이놈이 턱 들어 누워서 슬쩍 토해내서 슬금슬금 씹습니다.

양이 바탕이 평화적인데 그런 모양으로 너도, 사람은 다 그렇지만 더구나 신앙생활, 믿는다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산다는 사람은 평화적이야 돼. 또 단순해야 돼. 생각이 단순해야 돼, 이러고 저러고 남 비평하고 남 눈치보고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여기가 셋째 조건에 이게 위험이 들어옵니다. 이 때문에 어려운 것이 있지. 그래 거기, 아까 여기 처음 말씀한 것을 보면 양의 우리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씀의 요점은 어디 있냐 그러면 너에게는 양 같은, 먹이 때문에, 아무래도 양의 우리가 필요하고 목자가 필요해. 단체 생활해야 되지. 또 평화적이지, 남을 해할 것이 없는데, 이 세상에는 확실히 우리를 해할 악의가 있어. 성경으로 하면 사탄이란 말로 표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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