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노란 예수

종려주일/4월 두번째 주일
종려주일, 노란 예수
누가복음 23:32 – 43
정해빈 목사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고난받으신 일주일을 기념하는 종려주일/고난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오늘부터 다음 주일까지 일주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오늘은 지금부터 130년 전인 1889년 폴 고갱(Paul Gauguin)이 그린 [노란 예수] 그림을 소개하는 것으로 종려주일 설교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지난 연말 한국에서 옛날에 우리 교회 신앙강좌 강사로 오신 홍순관 목사님을 만났는데 홍목사님께서 [노란 예수] 그림을 프린트에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1848년 프랑스에서 파리에서 태어난 폴 고갱은 당시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식민지 개척과 수탈, 자연파괴, 노예사냥 같은 악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며 유럽 기독교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시와 순수를 찾아 태평양의 타이티 섬에서 여생을 보냈고 그곳에서 유명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폴 고갱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몇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고갱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노란색으로 표현했고 그림의 제목을 [노란 예수, 황색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왜 노란 예수일까요? 빨간 예수, 파란 예수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노란 예수일까요? 노란색은 평화로움, 따뜻함, 위로, 평온, 안식을 가리키고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로해주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안식을 준다는 뜻에서 예수님을 노란 색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고통스러워하거나 분노하는 얼굴이 아니라 죄인들과 악인들을 용서해 주는 얼굴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우리들의 죄가 다 씻어지고 용서되고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는 따뜻한 얼굴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노란 예수]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뒤의 들판도 역시 노란색입니다. 노란색은 가을의 열매와 추수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길이 인류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추수한다는 의미에서 들판을 노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모든 나무는 자기 열매를 먹지 않듯이 주님은 자신을 제물로 매달아 인류의 구원 양식이 되셨습니다.

두번째로 고갱은 마지막까지 주님 곁에 있었던 3명의 여인들을 십자가 밑에 그렸습니다. 그림 오른쪽을 보면 담장을 넘어서 도망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3명의 여인들은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고난을 슬퍼하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12명의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몇몇 여인들은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제자의 가장 큰 조건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본다면 십자가 곁에 있는 이 여인들이 진짜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3명의 여인을 자세히 보면 흑인 여인이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폴 고갱이 살았던 시대는 유럽 백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흑인 여성들은 노예로 팔려가는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가장 차별받았던 흑인 여성이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녀의 고통에 함께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주님께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 받으셨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 주님께서 잃어버린 양, 죄인과 병자, 노예, 약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가까이 하셨고 마침내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저 그림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고갱은 십자가를 그릴 때 십자가 위에 하늘을 그리지 않고 십자가 끝이 하늘과 닿도록 그림을 그렸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줍니다. 십자가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적인 사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고 우리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23장 말씀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과 두 명의 죄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가운데 매달리시고 죄수들은 오른쪽과 왼쪽에 매달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서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로마 병사들과 죄수 한명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였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면 너나 구원해 보아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자 또한 명의 죄수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한 죄수와의 대화가 우리들에게 큰 깨우침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왜 로마제국에 붙잡혔는지 알지 못합니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붙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고백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양심있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고통 중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시고 그를 위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는 항상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잊혀질까 두려운 사람들, 억울하게 고난받는 사람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함께 고난 받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고갱이 그린 [노란 예수]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죄 없으신 주님께서 고난받으심으로 온 세상을 노란색으로 따뜻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 것과 고통받는 자를 찾으시고 위로하시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십자가 고통 중에서도 저렇게 인자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고 십자가 고통 중에서도 외롭게 고통받는 사람을 먼저 찾으시고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세상을 따뜻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alm Sunday, Yellow Jesus
Luke 23:32 – 43

One of the most iconic paintings of Jesus’ cross is [yellow Jesus] painted by Paul Gauguin in 1889. Surprisingly he painted the background of this picture in yellow, which symbolizes peace, rest and abundance. Paul Gauguin seems to have emphasized yellow in the sense that the cross of Jesus forgives us, saves us, and enriches our lives. Moreover, he painted the face of Jesus with a peaceful image, not with anger and painfulness, to emphasize again that Jesus embraces and forgives us. Lastly, he described three women sitting under the cross. In particular, he painted the image of a black woman near the cross to emphasize that Jesus is near those who suffer.

Luke 23 points out that two “prisoners” were hanging together beside Jesus on the cross. Jesus said to one of the prisoners who said, “Remember me when you enter into the kingdom of the Lord,” that you will be in paradise with me today. Truly the Lord came to us to comfort the suffering. Today’s passage states that there is always the Lord beside the suffering people. He came to remember and be with those who were afraid to be forgotten, those who were unjustly afflicted, and those who were lonely and tough. The Lord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I am with you.” Today’s scripture reminds us that we are also called to comfort the suffering, to share the pain with them, to make the world warm and enrich, along with the Lor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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